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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 명지시장 ‘전어활어시대’…칼질에 좌우되는 뼈·살점·껍질 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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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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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팔도 전어 열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전어활어시대를 연 부산 낙동강 하구 신포마을 옆 명지시장 내 ‘명지장터 횟집’ 천동식 사장과 그 아들이 나란히 전어회를 장만하고 있다.
부산 명지장터횟집 부자가 장만한 4종류의 전어회. 왼쪽부터 손가락 굵기로 뼈째썰기·살점국수(국수처럼 가늘게 뼈째썰기)·넙데기·통마리 방식(위). 전어회는 깻잎에 된장 소스, 마늘과 고추를 올려 먹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상추는 깻잎에 비해 맛이 덜하다.
1981년부터 전어활어시대를 열기 시작한 부산 명지시장 활어센터 서문 입구와 전경. 올해로 19회째 전어축제를 열고 있다. 현재 전어를 파는 업소는 80여개.
낙동강 하구 전어잡이 배가 부산 명지동 영강포구에 정박해 있다. 이들 배는 새벽에 다대포와 가덕도 사이 해역에서 조업을 한다.

‘낙동강 전어’. 이걸 알려면 너무나 광대한 삼각주와 모래톱 유역을 가져 외지인들에겐 섬이 아니라 하나의 육지로 보이는 하구의 지형도부터 알아야만 한다. 낙동강 기수역은 부산의 서쪽끝이랄 수 있는 가덕도, 그리고 부산의 최남단인 다대포 사이. 여행작가급이 섬기는 비경을 간직한 몰운대 근처 다대포 아미산 전망대에 올라가야 겨우 하구의 그림이 헤아려진다. ‘바다보다 더 넓은 낙동강 하구’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낙동강이 525㎞ 흐르다가 부산 강서구에서 서낙동강과 동(본류)낙동강으로 분류된다. 원래 서낙동강이 원 낙동강 줄기였다. 그 오른쪽 현재 본류 낙동강은 일제강점기 동낙동강으로 불렸다. 일제는 서낙동강에 대동수문을 조성해 물길을 을숙도가 있는 동낙동강쪽으로 유도했다. 그래서 본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된 것이다. 동과 서낙동강 사이에 가장 큰 김해평야를 품은 삼각주는 남북 18㎞, 동서 16㎞ 넓이. 이를 포함해 명지, 대저, 맥도 등 모두 9개의 삼각주가 깨진 유리조각처럼 밀집형으로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1987년 2.4㎞ 하구언둑이 관통한, 지금은 철새공원으로 지정된 을숙도다. 뿐만 아니다. 삼각주를 빠져나온 낙동강은 동남해로 스며들면서 신자도, 장자도, 맹금머리, 백합등, 대마등 등 여러 모래톱을 만들어 놓았다. 전어로서는 천혜의 먹이공간을 갖게 된 셈이다. 그 방대한 모래사장에서 낙동강 재첩신화가 태동한다. 대한민국 최대 재첩이 한동안 섬진강 재첩을 압도해 버렸다.

지금은 거대한 에코델타시티 등 3개의 신도시로 개발된 명지동은 한때 ‘명호도’로 불린 섬이었다. 한강 여의도 같은 하중도였다. 거기 중리 어촌계 앞에 진묵천이 흘러 하구로 들어간다. 그 영강포구에 갔다. 거기에 전어잡이 배가 있다. 그 배로 명지김도 수확한다. 전국 생산량의 1%를 차지하는 명지김은 전어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25년전까진 선원들만 활어 상태 맛봐
수조차 선보인 명지시장 천동식 사장
새 활로 찾기‘전어 무료시식회’론칭
사람들 몰리며 축제 성공, 19년째 개최
가을이면 80여개 횟집 전어시장 변모

매끄럽게 썰어내는 수준급의 칼놀림
느릿하게 썰면 살점 터져 맛도 격감
머리까지 살려 10등분 된 ‘통마리 회’
된장·마늘·청양 고추·참기름·깻잎
토박이들이 즐기는 가장 억센맛 인상


◆ 대박 난 명지시장 전어축제

하지만 하구언이 생기면서 낙동강 하구의 특산물이 날벼락을 맞게 된다. 그 모든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장이 바로 명지시장 활어센터다. 그 명지시장에서 낙동강 하구의 자존심을 다시 살려낸 어종이 바로 전어였다. 전어가 그런 갑종 어류가 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다.

전어는 기술부족으로 활어 상태로 맛볼 수 없었다. 25년 전만 해도 활어 상태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원들뿐이었다. 전어를 산채로 뭍으로 가져와 소비자에게 회 형태로 팔 수 있는 인프라가 구비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어는 푸대접 받는 고기였다. 육지에 오르면 바로 죽어버린다. 설령 수족관에 넣어도 채 2일을 못 버틴다. 아무튼 선어 상태의 전어는 헐값에 팔려나갔다. 회로 먹는 건 언감생심. 하구 사람들은 명지도에서 생산된 명지소금을 사용해 밤(전어 위)젓을 만들어 먹었다. 또 연탄불 구이, 아니면 초회를 적당량 버무려 무침회 스타일로 활용했다. 일부는 건어 형태로 팔기도 했다.

천동식 사장의 작은아버지 천효준씨는 초대 사장이었다. 명지시장에서 ‘명지상회’란 어물전을 꾸려나갔다. 아버지가 군인이라서 천 사장은 숙부 밑에서 일을 배웠다. 시장을 품은 신포마을은 거짓말 조금 보태 까치복어, 꼬시래기(망둥어), 민물장어, 숭어, 웅어, 수조기, 참게 등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웬만한 생선은 다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유통해 밥을 먹고살았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재첩이었다. 하지만 하구언이 놓이면서 하구의 생태계가 급변한다. 재첩산업도 붕괴된다. 그 재첩 주도권은 낙동강에서 섬진강으로 이전해 버린다.

2대 사장이 된 천 사장은 막막한 현실을 자각한다. 변하지 않으면 밥먹기 힘든 시절이었다. 1981년부터 어물전을 확대개편한다. 그래서 탄생된 게 명지수산이다. 생선을 전국유통도 하고 회로도 팔았다. 자연산과 양식 어종이 공존하는 세상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하구언이 놓이기 전인 83년. 그는 선어시대에서 전어활어시대를 대비한다. 근처 조선소에 부탁해 원시적 방식의 수조차를 특수제작한다. 선박용 수지목을 사용했다. 초창기에는 ‘뽕뽕이’로 불렸던 수제 산소공급기를 장착한 고무통을 사용했다. 활어차는 서울 가락동 수산물시장까지 진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전어는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 2000년 여름, 충격적인 파동을 겪는다. 바로 비브리오균과 폐혈증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전국 어시장이 올스톱 된다. 고기를 잡아도 판로가 없었다. 소비자들은 생선을 먹으면 모두 죽는 줄로만 착각한다. 어민들은 물론 어물전 상인, 회타운 등이 동시에 추락한다.

그는 고인이 된 김형곤 부산 강서구의원, 명지동장 등과 긴급간담회를 연다. 당시 명지시장상인회 총무라서 그랬다. 순간 안심해도 좋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전어 무료시식회’를 론칭한다. 술도 공짜로 풀었다. 어민들도 잡은 고기를 기꺼이 기증했다.

축제용 천막을 쳤다. 행사명은 ‘고객사은잔치’였다. 2000년 9월5일이었다. 그게 제1회 명지전어축제인 셈이다. 손님이 올까 싶었다. 기우였다. 떼로 몰려들었다. 전어도 대박이었다. 첫날 온 손님이 다음 날 지인을 몰고 다시 찾았다. 졸지에 전국 뉴스를 탄다. ‘가을 전어’가 뉴스메이커가 된다. 2회부터는 500만원의 지원금까지 받았다. 3회 무료시식회부터 전어축제란 이름을 갖게 된다. 2회 때 다대포, 마산어시장 등에서도 전어축제를 벤치마킹했다. 된다 싶었던지 서울의 모 구청 등에서도 전어축제 러브콜이 들어왔다. 2003년 식객 최원준 시인도 부산일보를 통해 명지전어를 처음 소개한다.

◆명지시장 스타일 전어

현재 ‘ㄷ’자 구조의 명지시장. 80여 개의 횟집이 모여있다. 예전에는 신포시장으로 불렸다. 입구는 모두 3군데. 지금 이곳에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전어를 판다. 그래서 가을이면 전어시장이 된다.

지난달 1일 햇전어가 초매됐다. 전어축제는 8월20~22일 열렸고 늦을 경우 11월 중순까지 전어가 팔린다. 전어 시즌에 앞서 복어가 많이 잡힌다. 전어 다음에는 망둥어, 숭어, 대구, 농어순으로 어종이 순차적으로 팔려나간다. 그러면서 겨울이 깊어질 것이다.

“올해 중 오늘 전어값이 가장 센 것 같습니다. 1㎏에 3만원에 거래됐네요. 1㎏이라면 전어 10마리 정도. 한 마리 당 3천원이죠. 예전 어판장 경매사가 봤다면 이 가격을 도저히 믿지 못할 겁니다. 물량이 넉넉할 때면 ㎏당 1만원 밑으로 내려갑니다.”

명지장터횟집 테이블에 앉아 전어회를 기다렸다. 3년 전 가업을 이어 3대 사장이 된 아들과 아버지가 나란히 수족관 뒤 도마 앞에서 전어를 장만한다. 모두 말이 없다. 아들이 전어의 숨을 끊어준다. 대가리와 등의 경계에 1㎝ 남짓 예리한 칼날이다. 고기 장만용 칼은 써는 용보다 반 정도 짧다. 10㎝ 정도. 핏물과 내장을 잘 제거해 아버지에게 건네준다. 이 때 가급적 민물에 덜 노출시켜야 된다. 비린내 때문이다.

40여년 구력의 아버지의 칼놀림은 이 장터에서도 수준급이다. 전광석화와 같다. 초보자가 채소 썰듯 느릿하게 썰면 살점이 다 터져버린다. 그럼 식감도 격감해 버린다. 살점에 층계가 생기지 않게 썬다. 일반 흰살생선을 썰 때는 너무 매끄러우면 되레 식감이 떨어진다. 조금 거칠게 썰어야 되지만, 전어는 매끄럽게 썰어야 된다. 껍질과 뼈가 식감을 우선적으로 제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는 전어의 맛이 양념장에서 발원된다고 믿는다. 무침회는 회 다음의 대안이라고 봐야 한다.

일단 전어의 맛은 그 놈이 노는 바다의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실제는 능수능란한 칼질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그 칼질이 씹힘의 강도와 질감을 피워낸다. 전어의 향미와 기름기보다 어금니 위에서 피어나는 그 ‘씹힘성’. 그게 그리워 단골집을 찾는 것이다. 문제는 적당량의 뼈·껍질·살점의 황금분할을 어떻게 완성시키는가이다. 연륜과 경력이 말해줄 수밖에 없다.

명지시장에 오는 손님은 두 부류다. 대접받으며 편하게 풀코스식으로 먹고 싶으면 조금 비싸도 일반 횟집에 가면 된다. 저렴하게 푸짐하게 먹으려면 회센터와 연계된 초장집으로 가면 된다. 양념과 채소를 포함 상 차림비로 3천~4천원을 내면 된다. 포항 죽도시장의 회코너도 대다수 이런 버전이다. 현재 초장집은 경포, 청정, 산옥, 제일, 염막수산, 경포 등 6곳이다.

천 사장은 모두 네 종류의 회를 둥그런 접시에 보기좋게 세팅을 했다. 통마리·넙데기·살점국수(국수처럼 가늘게 뼈째썰기)·손가락 굵기로 뼈째썰기다.

머리까지 살려낸 10등분 된 통마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장 억센 맛이다. 바닷가 토박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육지에선 이런 방식이 선호되지 못한다. 다들 칼국수처럼 막 썰어내는 걸 좋아한다. 도시인들은 다같이 치근이 좋지 않다. 그래서 젊은층 회가 점점 부드러워진 것이다.

토박이들이 즐기는 통마리 방식에는 필수 양념장을 사용해야 된다. 된장에 적당량의 마늘과 청양고추, 거기에 참기름 한 점을 섞어 만든다. 맛을 봤다. 다르다. 대구에서 먹던 그 전어와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왜 여기서는 칼맛이 느껴질까. 전어 어부들이 왜 전어는 초장맛이 아니라 된장맛이라고 하는지 그걸 절감됐다.

조심할 게 있다. 된장소스에 분말고추냉이, 간장, 초장 등을 섞으면 통마리 특유의 식감이 무너진다. 나머지 두 종류의 회는 두 종류(초고추장과 분말고추냉이간장)인데, 입맛대로 선택하면 만사형통.

글·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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